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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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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안녕 에리 라는 만화를 읽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단 하루만 지나면 2023년이 지나간다. 작년 룩백에 이어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만화를 가져왔다. 한글 출판하기를 목빠지게 기다린 안녕 에리가 올해 한국에 나온걸 기념하여 2023년 회고록의 제목을 안녕 2023년으로 해보았다.

2023년도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나 큰 변화가 있는 한 해였다.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현재 가지고 있는지 적어보려한다.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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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성장 == 나의 성장? 🤔

왈라의 성장속에서

개발을 열심히 진행할수록 왈라의 기능도 다양해지고 사용자들도 확실히 늘어나는 것을 체감하였다.

그 증거로 정말 불티나게 메시지가 올라오는 디스코드의 고객문의 채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덕트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보람있는 일이었다. 파프리카데이터랩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우리 회사는 디자이너도 없고 기획자도 없으며 QA팀같은것은 당연히 없다. 대표님을 포함한 팀원 5명이서 프로덕트의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바를 프로덕트에 바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회사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적으로도 백엔드 개발자가 없기 때문에 비록 Firebase와 같은 백엔드 툴을 빌려 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DB부터 UI까지 온전히 모든 개발과정에 참여하며 프로덕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나같은 주니어 개발자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프로덕트의 성과는 곧 나의 성과로도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어떤 개발자인가

허나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나의 위치에 대한 물음도 따라왔다.

현재 회사에서는 풀스택 개발자처럼 일하고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결국 프론트엔드 개발자이다. 그동안 공부하고 탐구한 내용도 거의 프론트엔드이며 현재의 관심사도 결국 프론트엔드이다.

백엔드를 파이어베이스의 힘을 빌려 어느정도 구사하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한 바도 없고 회사에도 백엔드 개발자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레퍼런스도 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 백엔드 개발자와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고 풀스택 개발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SQL DB와 쿼리문을 다루며 서버를 운용하는 경험 정도는 있어야 경력으로 인정될 수 있는 풀스택 개발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는, 나는 많이 성장했을까?

회사에서 개발을 계속하면서 느낀점은 어찌됬던 기능구현은 결국 한다라는 점이다.

GPT, 스택오버플로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오픈소스나 라이브러리등을 통하여 구현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어도 회사에서 목표한 기능들을 결국 구현할 수는 있었다. 프로덕트 관점에서는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기획했던 기능을 사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피드백을 얻을 수 있으며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개발적으로는 후련하지가 않다. 개발한 기능이 다소 buggy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적은 코드들이 좋은 코드인가? 이 기능을 이런 코드로 개발을 하는게 맞나? 온전히 나의 판단으로 모든 개발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TypeScript와 같은 언어에 더욱 익숙해지고 React, Recoil과 같은 기술 스택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확실히 실력이 상승했다고 느꼈고 실제로 개발속도도 작년과는 비교도 안되게 빨라졌다.

허나 근본적으로 좋은 코드를 쓰려하고 그 과정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점점 생략되가는 것을 느꼈다. 내 기준으로 코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작업 속도는 늦춰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프로젝트에 대한 코드의 일관성을 위해 다른 팀원들과 맞춰가야하는 부분도 있어 대화도 많이 필요하다. 왈라가 점점 성장하면서 왈라의 성장속도에 나를 맞추기 위해 뒤를 보지 않고 너무 앞만 달린것은 아닐까?

개발자가 단순 개발만 잘하는 것은 요즘 시대상과 맞지 않다. 어떤 회사는 개발자를 단순 개발 능력에 국한시키려 하지않고 프로덕트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며 능동적으로 문재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중요시하여 Problem Solver라는 포지션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포지션으로는 나는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UX와 같은 사용자 경험과 유저 플로우를 고려하는 개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잘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사용자들에게 좋은 피드백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숙련된 개발자에 대한 갈증이 있는 나는 아직 이 부분에서는 목이 한참 마르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더 나을까? 다양한 우물을 파는것이 더 나을까?

개발자 뿐만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격체에 한해 모두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작은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To Canada 🇨🇦

캐나다를 어떻게 가게된건데?

캐나다를 가는건 사실 파프리카데이터랩에서 지속적으로 목표한 바이다.

내가 입사하고 수습을 마쳤을 때 부터 이미 나에게 말해준 내용으로 대표님 두 분 모두 해외진출에 대한 열망이 있으셨다. 왈라는 폼 빌더 플랫폼이기 때문에 한국 파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파이를 겨냥하였을 시 더욱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주장하셨다. 파프리카의 해외진출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면 이 포스팅을 보면 될거 같다.

시기가 언제이냐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2023년안에는 가는 것으로 대략 정해져 있었다. 출장 개념이 아니라 정말 팀 자체를 캐나다로 옮기시려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는 큰 무브먼트였다. 한국을 넘어서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은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 꿈꿔본 커리어일 것이다. 나도 물론 그런 커리어를 꿈꾸긴한다. 하지만 아직은 해외로 갈 준비가 안되어있었고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다. 주변 지인들은 일단 가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면 되지 않냐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회사가 지금까지 해외진출을 위해 쌓아온 노력을 생각한다면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가는 것은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는것 같아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하지만 영범님(대표)이 3개월정도만 가보는것이 어떠냐고 설득하셨고 영범님의 진심과 해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경험을 언제한번 또 겪어볼 수 있을까에 대한 마음이 커져 번복을 하고 캐나다에 따라가게 되었다. 6월쯤 왈라가 후속투자를 받은 시점부터 3주 후 7월 초에 나는 그렇게 캐나다에있는 오타와로 떠났다. 슈우웅~✈️

In Ottawa 🍁

오타와에서의 생활은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다. 회사가 준비를 많이 안하고 갔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자리잡는데 있어 어려움이 꽤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그냥 막연히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다를게 없으면 왜 굳이 힘들게 먼 타지까지 와서 일을 할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캐나다에서 일하는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회사가 한국에 있을동안 보여줬던 해외진출의 열망에 비해 막상 오타와에서의 움직임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회사도 이렇게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처음이고 작은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좋은 여건에서 일을 보장시키는게 어렵고 액션을 취하는 것에 있어 제약이 많겠지만 한국에서 좀 더 준비하고 가는 것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 캐나다에 있는 초반 한달동안은 하루빨리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싶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그리웠고 음식/거주 등 환경이 너무 안맞아서 영범님한테 10월 안쪽으로 한국으로 가고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전에도 그렇고 해외진출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면 퇴사를 한다는 의미가 컸고 이는 나중에 회사를 나오는 것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겪었던 경험은 정말 내가 살면서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를 느낄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단체생활이었다.

남자 4명이서 한 집에서 살았는데 군대 이후로 이렇게 가족이 아닌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다들 친하긴 하지만 어찌됬건 직장 동료이기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편하지만 또 마냥 너무 편하게 대해서는 안되는 그런 미묘한 선을 지켜야 하는 단체 생활을 통해 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

재미있는 기억도 많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퇴근하고 근처 편의점을 다같이 들려서 맥주를 사며 티비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하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낭만 MAX랄까 😆😆. 다 같이 한식을 먹기 위해 한국 식재료를 사러 떠나고 집에서 요리해먹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집 근처 배드민턴장 수영장에도 퇴근 후에 주기적으로 놀러갔다.

이렇게 팀원들과 일 외적으로도 재밌는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첫번쨰 문단에서 너무 힘들었던 점만 말한거 같은데 즐거웠던 순간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는 것!!

배드민턴장에서 본 무지개 (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한 무지개였다)

더 얘기하고 싶은것도 많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과 여행기는 추후에 diary태그로 포스팅을 하려한다. 너무 길어질수도 있기때문에 하하..😅 그렇게 추석연휴간 캐나다 여행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파프리카데이터랩을 퇴사하게 되었다. 작별인사..😭😭😭

파프리카데이터랩을 떠나며…🫑

왜 파프리카를 떠나는가

파프리카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첫번째 회사를 나갈거라는 암시를 너무 많이 줘버렸다. 사실 이렇게 빨리 나갈 예정은 절대 아니었다. 최소 2년, 보통 3년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캐나다 회사 이전이라는 변수가 크게 생겨버렸다.

캐나다를 올해안에 갈꺼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올해 갈지는 몰랐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올해 안에 가는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내년이나 내후년은 되야 회사가 해외진출을 할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하였지만 역시 파프리칸은 기다리지 않는다!!! 🤣🤣🤣 낭만 찾아 바로 떠나려는 회사와 한국에 남고 싶은 나의 이해 충돌이 발생하였고 이 때 부터 나는 약간 나갈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두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욕심이다.

첫번째 이유로 인해 회사를 나가게 된다면 더 개발인력이 있고 개발문화가 잡혀있는 그런 규모있는 회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평소에도 있었고 아무래도 더 프로세스가 잡혀있는 업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프론트적으로도 보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파프리카데이터랩은 파이어베이스에 크게 의존하는 회사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프로덕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매출도 크지 않고 MAU도 2000명정도 되기에 파이어베이스를 쓰기에는 적합한 구조이지만 개발자 입장에서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력을 온전히 3년정도 쌓았을 때 AWS 인프라나 백엔드 개발자와의 협업 경험이 없는 것은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생각을 통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회사를 나오는게 좋다고 판단하였고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다.

반성

파프리카데이터랩에서 일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아쉬운 점도 많다.

회사의 개발문화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나 스스로 크게 바꾸려는 액션을 많이 취하지는 않았다.

작년에 좋은 코드를 쓰는 과정에 대해 팀원들과 논의하고 고민한 결과 코드 퀄리티를 너무 신경쓰느라 작업 속도가 지연되는 것은 지양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이 블로그 글을 많이 참고하였으며 코드리뷰와 리팩토링을 통해 코드 퀄리티를 보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능 구현에 집중하여 코드 퀄리티를 잠시 미루더라도 그 후에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한데 잘 지켜지지 않으니 흔히 말하는 스파게티 코드가 넘치는 악순환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코드리뷰라던가 코드 컨벤션을 정하는것 또는 어떻게 하면 클린한 코드를 작성할 수 있을지 이런것을 애기한적은 몇번 있지만 팀 회의나 스탠드업 미팅 때 진지하게 정하려고 하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입사 초반에 프로젝트가 크지 않았을 때는 이런것에 대해 팀원들과 논의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프로젝트가 커지고 개발팀을 총괄하던 영범님이 대표이기 떄문에 점점 바빠지다 보니 각자의 개발을 모습이 많아졌다.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내 코드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나 또한 주어진 태스크를 마치고 버그픽스를 한시라도 해결 하는 것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잡았었기 때문에 점점 개발만 하는 개발자가 되어갔다. 더 능동적인 개발자가 되어 개발문화를 주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파프리카데이터랩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매우 열려있는 회사이고 실제로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나에게 파프리카데이터랩이란?

파프리카데이터랩은 나에게 첫 직장이었다. 첫 직장이기 때문에 회사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기 힘든 면도 있는 것 같다. 다른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기 때문에 파프리카데이터랩이 다른 회사에 비해 어떤 강점을 가지는지 어떤 단점을 가지는 지 명확하게 알 수 는 없지만 나름 정리를 하고 싶다.

내가 느낀 파프리카데이터랩의 장점은 다음과 같고

  • 친밀하고 수평적인 분위기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
  • 프로덕트(왈라)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 즉 단순 개발자로서 기능 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닌 프로덕트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
  • 완전한 풀스택은 아니지만 풀스택처럼 개발할 수 있는 점
  • 스타트업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 및 이벤트(SLASH, 디캠프 철권대회 주관, Next Rise 등)

파프리카데이터랩의 단점은 다음과 같은 것 같다.

  • 다소 빈약한 프로세스(개발 및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 주니어로만 구성된 개발팀 및 사수 부재
  • 회사가 좀 즉흥적인 측면?이 있다

사실 첫번째 단점이라면 전반적인 소규모 스타트업이 대체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문제라 생각하고 두번째는 큰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니어 개발자는 보통 큰 회사에 있기 때문에. 세번째 단점이 좀 내가 느끼기엔 꽤 큰 단점인거같은데 캐나다에서 많이 느낀 만큼 회사가 잘 보완했으면 좋겠다.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장점이 더 많은 회사였고 이러한 단점들은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다.

파프리카에서 얻은 추억이 정말 많다. 서로의 친구를 초대하는 파프리칸 파티, SLASH를 체험하기 위해 직원들 모두 다같이 간 핀란드 여정, 영범님 양평집에서 5일간 같이 몬스터 열심히 마시면서 진행했던 Flow 해커톤, 열심히 부스에서 왈라를 홍보하던 NextRise, 그리고 동거동락하며 지낸 캐나다 생활까지..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같이 왈라를 위해 열심히 머리를 맞대며 사무실에서 일하던 순간일 것 같다.

서울대 벤처타운에서부터 마포 디캠프 그리고 오타와 베이뷰까지 일하면서 다른 스타트업을 가도 이런 다이나믹한 경험을 끈끈한 팀원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나와 프론트엔드 개발을 같이 하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었던 오타와 룸메 정준님, 유쾌하고 정말 말이 잘통했던 맛집메이트 용관님, 핀란드에서 멋진 바다를 같이 봐주러간 지윤님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나한테 첫 직장으로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준 유빈님과 영범님한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안녕 파프리카

첫 이직 도전기

첫 직장생활이 끝났기에 이제는 첫 이직을 해야할 순간이 왔다. 첫 이직에 대하여 나는 어떤 성적표를 받았을까?

결과는 대실패였다.(참담…😵)

40개가까이 되는 회사에 지원을 하였지만 최종합격된 회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시장이 이 정도로 차가울 지 몰랐고 경력도 생겼겠다 회사들이 좀 반길줄 알았는데 현실은 개차반이었다. (실패한 청년… 오만한 청년…)

현 실태에 대해..

물론 기준을 높인것은 있다. 저번 회사는 공덕에 있었기 떄문에 출퇴근하는것이 너무 힘들었어서 이번엔 강남이나 분당쪽으로 위치를 고정시켰다. (참고로 본인은 판교에 거주중이다..TMI..) 또한 회사규모는 최소 20명이상인 회사로 가급적이면 지원을 하려했다. 이번에도 4-5명의 소규모 스타트업에 취업한다면 파프리카데이터랩을 나온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발팀도 어느정도 갖춰져있는지 최대한 회사채용페이지를 통해 최대한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서류합격률이 현저히 낮았다. 서류합격은 총 7곳을 하였으며 이 중 면접까지 간곳은 5곳이다. 서류합격률이 낮은 것에 있어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한 방법이 좋지 못하였다. 현재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수정 중에 있으며 이에 대한 것은 따로 포스팅을 하여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면접을 보며

면접은 면접관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다. 공통적인 것은 전 회사의 이력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내 경력이 현재 IT 회사들에게 큰 어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파이어베이스 위주의 프로젝트 경험이 실제 서버를 운용하는 회사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혼자 기획/디자인/개발까지 모두 한 것이 주니어 개발자에게는 올라운더라기 보다는 협업 경험이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도 면접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 같다.

경력자에게 기대하는 부분 중 하나인 성능 최적화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전 회사의 경우 기능구현에 집중하고 프로덕트의 버전을 빠르게 업데이트하여 사용자들의 반응을 읽어내는 것을 우선적으로 잡다보니 최적화애 대한 부분은 팀원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버그 픽스가 항상 최우선이었어서 버그 고치는데만 한세월인데 뭔 성능 최적화여~~ 라는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기술적인 면접에도 매우 약했다. 실무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개념적인 부분을 많이 놓치고 있었다. React와 javascript에 대한 부분은 무난하게 대답한거 같지만 기본적인 웹 개념에 대해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http와 https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거나 DOM 개념과 같은 부분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특히 자료구조와 같은 CS지식을 연계해서 물어봤을 때 정말 대답하기 어려웠다..ㅠㅠ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내 이력서를 제대로 읽었나? 라는 느낌을 받은적이 꽤 있다. 면접관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면접까지 온건데 너무 나에 대해 모르는 느낌이 드면 면접에 붙기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바로 들고 나름 짧지만 열심히 쌓은 경력인데 어필이 잘 되지 못한다는 것에 섭섭한 감정도 들었다.

이력서가 채용관들의 머리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이력서의 가독성이 쉣이다.
  2. 채용관들은 수많은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봐야하기 때문에 너무 바쁘다.

두번째 이유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니 첫번째 이유를 잘 돌이켜 생각해봐야한다.

빨간약(Red Pill) 💊

계속 채용공고를 보다보니 정말 취업하는게 쉽지 않겠다는 것을 느꼈다. 시장이 너무 차갑고 개발자에 대한 허들이 전보다 계속 높아지는 것 같다.

내가 신입으로 2022년 취업을 도전하였을 때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1달만에 3군데를 합격하였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가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는데 현재 상황은 아예 다르다. 경력직도 대부분 3년이상을 요구하는 회사가 많고 썡신입으로 들어가기엔 내 경력이 어느정도 있는 것이 애매하다. 요즘 규모있는 회사는 서류에 과제에 코테에 1,2차 인터뷰까지 정말 프로세스가 길다. 회사에서도 그만큼 인재를 뽑는것에 매우 신중하다는 것이고 내가 그런 인재상을 충족할 수 있을까?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는다. 나는 토끼굴이 과연 어디까지 깊은지 보여줄 걸세. 명심하게. 난 자네에게 오직 진실만을 보여준다는 걸 - 모피어스, 매트릭스(Matrix)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주인공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진다. 빨간약을 먹으면 세상의 냉혹한 진실을 알게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진실을 모른채 가상의 현실만 보며 살게 된다. 회사 안에서 일하면서 경력만 잘 쌓으면 막연하게 이직도 잘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파란약과 같지 않았을까? 막상 회사에 나와 이직을 준비하며 현실과 마주친 나는 빨간약을 먹은 기분이다.

요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기회는 준비된자에게 오는 법

이직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경력직 이력서를 쓰는 방법이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상할지에 대한 준비를 회사를 다니면서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거에 대한 준비가 없이 너무 대책없이 회사를 나와버렸다. 또한 회사의 경력만 내세우기도 애매하다.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을 뿐더러 회사 코드를 보여줄수는 없으니까..

개인 프로젝트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면서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이 후회가 된다. 물론 변명은 할 수 있다. 회사일로도 충분히 피곤하니까.. 😮‍💨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열심히 준비하는 개발자는 수없이 존재한다. 그런 개발자에 비해 나는 경쟁력이 없어보이는게 당연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서 백엔드 개발자와의 협업, 그리고 AWS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배포나 서버를 구축하는 경험이 있었으면 현재 내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블로그도 많이 소홀히 했다. Velog에 썻던 블로그 글을 보니 포스트들이 정돈이 안되어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글을 쓰는 주기도 현저히 떨어졌다. 사실 작년 회고를 통해 블로그 글을 다시 주기적으로 쓰기로 다짐하였는데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참 할말이 없다..

이러한 점이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런 나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직에 자꾸 실패하다보니 파프리카데이터랩을 나온것에 대한 후회가 깊어졌다. 너무 안일하게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마음같아서는 워터세븐에서 루피에게 다시 배에 태워달라고 울면서 손을 내밀었던 우솝처럼 다시 파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

하지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목표한 바를 달성하고 싶다.

블로그를 기존의 velog에서 벗어나 직접 만들었다. 지금 이 포스트는 새로운 블로그로 작성하는 첫번째 포스트이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며 개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것을 기록하고 싶다. 기존에 있던 블로그 글들은 옮기지 않을 생각이다. 신입이 아닌 경력을 가진 개발자로서 포스팅할 퀄리티의 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글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요즘 유튜브로 개발에 관한 영상을 많이 보고 구독하는데 도움이 되고 관점도 많이 열리는 기분이 든다. 새롭게 배우거나 알게 된 것에 대해 영상을 올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편집 공부를 해야하나..?? 😅)

프론트면접 질문들을 리스트업하고 다양한 책과 자료들을 공부하면서 개념적으로도 단단한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다. 성능 최적화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해볼 것 같다. 현재 사이드 프로젝트를 2개 진행하고 있다. 물론 사이드 프로젝트는 스케일이 가볍기에 성능 최적화를 적용하기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Lighthouse 같은 성능 측정 도구를 적극 사용해보거나 캐싱, 렌더링 최적화 등 프론트에서 성능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준비 과정이 길어질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움직임에 있어 지속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고싶은 회사, 가고싶지 않은 회사를 떠나서 그 회사가 원하는 개발자의 인재상이나 채용을 할 떄 중점으로 고려하는 사항 등을 듣는 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들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나를 더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목표는 유희왕 카드를 다시 수집하고 싶다..(뜬금없나 ㅋㅋㅋ) 요즘 유튜브로 옛날 유희왕 카드깡을 많이 보는데 어렸을 때 기억도 많이 나고 형이랑 카드 수집에 한창 목숨걸던 시절이 있어서 다시 가슴이 뜨겁게 지피는 느낌이랄까.. 어렸을 때는 돈이 없어서 1-2팩 밖에 못샀지만 이번에는 박스채로 사서 원없이 카드팩을 뜯고싶은 마음이 있다. 그럼 언능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정리하자면 2024년 상반기 목표는 다음과 같다.

  • 꾸준한 로깅

    • 블로그
    • 유튜브
  •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

    • 디자이너/백엔드 개발자와의 협업
    • 유용한 기술 스택 공부
    • 성능 최적화에 대한 고민 및 탐구
  • 스터디

    • 기술 면접 스터디
    • 자바스크립트/리액트 및 기타 웹 프레임워크/라이브러리
  • 회사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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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곧 선물이다. 문제 없이는 성장도 없다.” - 토니 로빈스, 동기부여 강사 겸 작가

성장을 꼭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라는 법은 없다. 지금 이 과정도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2023년 후반기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이 포스트를 쓰는 지금 2023년이 지나고 2024년을 맞이했다.

판타지가 살짝 모자라지 않아?

판타지가 가득한 2024년이 되길 바라며…

안녕 2024년